시인과 두텁바위 사이에

November 23, 2022

Author: 김준기 @ Lerici

1.

도깨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오래도록 사람의 손을 탄 빗자루가 피를 머금으면, 생명을 얻어 어두운 숲으로 사라집니다. 사람의 옷을 주워 입고 불쑥 나타나는, 인간 같지만 알 수 없는 그 존재는 술과 내기를 좋아해서, 잘 어르기만 한다면 친구도 될 수 있습니다. 악하고 욕심 많은 이는 골탕 먹이고, 꾀를 내거나 후하게 대접하면 부자로 만들어 준다 합니다.

오래된 숲은 상념으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존재적 공포나 섭리에의 무력함, 삶의 애환과 같은 성가신 감정들을 어둠 속에 던져 넣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숲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은 우리가 던져넣은 것들입니다. 선조들의 숲에 살던 도깨비들은 아마 서식지 파괴로 갈곳을 잃었을 것입니다. 신화적 존재는 두려움을 먹고 삽니다. 여전히 어둠을 두려워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곧 사라진 괴물들을 만날 것입니다.

애니미즘이란 유별하고 비합리적이지만, 무언가를 두려워할 줄 아는 이의 태도란 대개 비슷하게 나타나는 법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체에 속한 유물론적 존재이니까요. 변덕스러운 도깨비 터를 달래고 가꾸던 조심스러움이나, 오래도록 물건을 아끼고 길들이는 세심함은, 결국 자연과 환경을 존중할 수 밖에 없게 된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2.

이 지번은 산의 형세가 쏟아지는 골짜기 바로 옆에 자리한 '도깨비터'입니다. 당시의 민간 언어를 굳이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 굽이치는 바람이 모든 것을 쓸어내릴 것만 같은 땅입니다. 날이 잔뜩 서서 날뛰는 문장이 건축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김수근은 거대한 토템 두 그루를 심어 쏟아지는 폭포를 들어올리고, 그 아래 검은 기왓장 같은 벽돌로 터를 차곡차곡 눌러 진정시킵니다.

건축가는 이곳에서 아무런 욕심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는 좁고 긴 입구와 무성한 숲으로 집의 존재를 감춥니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 한복판에 있으면서, 어떤 길에서도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존재감을 죽인 건물이란, 객客ein Fremdes입니다. 이 땅에 잠시 머무르다 사라질 여인餘人입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놀다 도깨비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나는 70년대의 김수근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유명세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뒀을리가 없습니다. 이 집은 웅크린 채 세상을 관조하는 동굴입니다. 최소의 환기창만 달렸을 뿐, 집은 바람도 소리도 시간도 세상의 번잡스러움도 안으로 들이지 않습니다. 폭포수 아래에서 무엇을 하는가, 언어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참선하고, 의미의 근원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3.

있지 않은 선을 멋대로 만들어 긋고, 마치 제가 땅의 주인인양, 율법이 정한 내에서 최대한의 욕심을 부리는 것이 보통의 건축일 것입니다. 인본의 정신도 어느새 변질되어서, 건축은 법적 소유주만을 사람으로 모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땅에 금을 긋고 벽을 높이 세워도, 바람은 들고 새는 날아듭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율법은 내일이라도 바뀌고, 사람의 권세는 죽고 나면 그만입니다.

세상에 객으로서의 미안함이 가득한 건축의 미덕이란, 잘 낡아가는 것입니다. 산바람에 길들여지고 오래도록 사람 손을 탄 건물에는 슬그머니 생명이 깃들어, 스스로 땅에 웅크리는 짐승이 됩니다. 건축은 자연과 조응하고, 또 그곳을 찾는 사람과 어울립니다. 이런 집은 우리를 땅과 연결해주는 도깨비입니다. 그런 집에서 제가 주인인양 경거망동 하다간 혼쭐이 나죠.

이 짐승이 품고 있는 미안함을 닮고 싶었습니다. 결국 옷을 짓는 것도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옷은 객으로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오랜 시간을 들인 공예의 솜씨가 뛰어나다한들, 멋대로 땅을 밀고 들어서서 주인노릇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객은 땅을 두려워하고, 그 머묾을 미안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길이 들어 제 무게로 땅에 꼭 맞게 붙을 수 있습니다.

4.

지금은 시인의 이름을 따 소월이라 부르는 이 길의 원래 주인은 두텁바위the Great Stone였습니다. 아낙들은 새 생명을 기다리며 이 바위의 얼굴을 마주하고 기도를 드렸다 합니다. 거대한 바위는 산의 현신이며, 신에게 닿는 기원의 장소입니다. 그들의 정성어린 염원들이 정말 결실을 맺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제 스스로 어찌할 도리 없는 자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을지는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공방 자리를 잡으며 가장 먼저 한 일은, 두텁바위를 찾아 다시 들여놓는 것이었습니다. 바위는 땅이 기어코 뱉어낸 시간의 덩어리입니다. 조형물의 명확한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하여 소박하고 평범하나, 보는 이로 하여금 유구하게 흐르는 시간의 거대한 순환을 음미할 수 있게 합니다. 아직 그 어떤 생산물도 이러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이상 어떻게 할 도리 없는 자들의 공예란,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한과 찰나가 왜 같은 시간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나의 주장을 내려놓고, 시간이 남긴 것들을 아끼고 살피려 합니다. 시인과 두텁바위 사이 어딘가에 우리의 공방이 있습니다. 아득히 먼 순환의 지극히 작은 부분에,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역할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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